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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집회 금지’ vs ‘공무집행방해’…엇갈린 판결 [법원 앞 카페]

기사입력 2024-05-05 09:00

재판이 끝난 뒤 법원 앞 카페에 앉아 쓰는 법원 출입기자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때로는 소소하면서도 때로는 중요하지만 잊혀진 그런 법정 안팎이야기를 다뤄보려 합니다.

경찰이 공무를 집행하는데 이를 방해하거나 심지어 경찰관을 폭행까지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공무집행방해죄로 처벌될 겁니다. 그런데 경찰이 정당하지 않은 공무를 집행 중이었다면, 이를 막으려 시민이 경찰관을 폭행했다면 어떨까요? 그래도 공무집행방해죄로 처벌을 받게 될까요, 아니면 경찰의 공무가 정당하지 못했으니 처벌을 안 받게 될까요?

이런 일이 코로나19가 한창 확산하던 지난 2021년에 실제로 벌어졌습니다. 같은 사건을 두고 재판은 항소심까지 포함해 모두 4차례 진행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재판 결과는 서로 엇갈리게 됩니다. ‘과도한 집회 금지’냐 ‘공무집행방해’냐 판단이 갈렸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통행금지 맞서다 경찰 폭행

지난 2021년 광복절을 하루 앞둔 8월 14일 오전 서울 광화문 일대는 경찰버스와 철제펜스가 통행로 곳곳에 설치됐습니다. 앞서 서울시가 코로나19 확산을 우려로 광복절 기간 집회·시위를 금지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서울경찰청은 차도에 기동대 버스로 차벽을 치고, 인도에는 철제펜스를 설치해 통행을 막았습니다.

2021년 8월 14일 당시 광화문 일대에 세워진 차벽 (사진=연합뉴스)
↑ 2021년 8월 14일 당시 광화문 일대에 세워진 차벽 (사진=연합뉴스)
2021년 8월 14일 당시 광화문 일대에 쳐진 철제 펜스 (사진=연합뉴스)
↑ 2021년 8월 14일 당시 광화문 일대에 쳐진 철제 펜스 (사진=연합뉴스)

같은 날 오전 9시쯤 탈북민 남성 A 씨가 이 펜스를 넘어 들어왔습니다. A 씨는 보수성향 정당인 국민혁명당 소속으로 당시 당이 추진하는 ‘걷기 대회’에 참여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이름만 걷기 대회일 뿐 사실상 집회를 하려는 거라 보고 A 씨를 비롯한 당원들을 막아섰습니다.

당시 경찰은 A 씨에게 “이 장소는 집회 및 시위가 금지됐고, 경찰이 질서유지를 위한 차단 펜스를 설치해 일반인 통행을 막고 있으니 펜스 바깥으로 나가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A 씨는 “니들이나 똑바로 해라, 내가 왜 나가냐”라며 맞섰습니다. 결국 경찰관이 A 씨를 제지하려 막아섰고, A 씨는 “니가 뭔데 나를 폭행하느냐”며 경찰관의 목을 한 차례 때렸습니다.

여러 경찰관들이 A 씨를 둘러쌌고, A 씨는 “이 개XX들아 다 같이 죽자”라고 욕설을 하는가 하면 철제 펜스를 집어 던지려 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경찰관들은 A 씨를 공무집행방해와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현행범 체포했습니다.

2021년 8월 14일 당시 광화문 일대 통행을 제한하는 경찰 (사진=연합뉴스)
↑ 2021년 8월 14일 당시 광화문 일대 통행을 제한하는 경찰 (사진=연합뉴스)
2021년 8월 14일 당시 경찰에 제지당하는 시민 (사진=연합뉴스)
↑ 2021년 8월 14일 당시 경찰에 제지당하는 시민 (사진=연합뉴스)

잇따른 무죄 선고

A 씨는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재판에서 검사 측은 “사전 금지된 집회·시위 장소에서 경찰공무원의 질서와 안전 유지에 관한 정당한 직무집행을 방해했다”며 처벌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법원 판단은 달랐습니다. 지난 2022년 12월 형사재판 1심 법원은 A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A 씨가 경찰관을 폭행한 건 맞지만 공무집행방해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봤습니다. ‘방해받은 공무가 적법했다’는 전제가 성립돼야 하는데 당시 경찰의 공무 즉 집회를 막으려는 시도는 적법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당시 피고인의 출입을 경찰관이 통제하려 한 전제는 이 사건 발생 장소가 일반인의 출입이나 머무르는 것이 제한되었음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이 시간 발생 장소에 피고인을 비롯한 일반인이 출입하거나 머무는 것을 금지할 수 있는 법률상의 근거를 찾기 어렵다. 국민은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가지고 그에 따라 일반 공중에게 개방된 장소를 제한 없이 통행할 수 있는 것이 보장된다. 법률에 근거하지 않은 이상 일반 국민의 출입을 통제할 수 있는 효력이 발생한다고 볼 수 없다.

- 2022년 12월 형사재판 1심 선고

당시 경찰에게 주어진 임무는 ‘집회’를 막는 것이지 ‘통행’을 막는 것이 아닌 만큼 통행을 막는 건 과도하다는 판단을 내린 겁니다.

검사 측이 항소했지만 2심의 결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심에서 검사 측은 ‘행위를 제지하지 않으면 인명·신체에 위해를 미칠 수 있는 급박한 상태’라면 제지할 수 있다는 경찰관 직무집행법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당시 A 씨를 제지하지 않았다면 코로나19 확산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통행을 막은 건 정당한 공무집행이었다는 주장입니다. 2심 법원은 이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피고인은 경찰이 설치한 차단 펜스를 넘었을 뿐이고 당시 금지됐던 옥외 집회나 시위의 정도에는 이르지 아니하였으며, 단지 피고인이 위와 같은 옥외 집회나 시위에 참여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정만으로 경찰관이 이를 예방적으로 저지할 수 있다는 법률적 근거는 찾아보기 어렵다.

- 2023년 12월 형사재판 2심 선고

검사 측이 상고하지 않아 A 씨는 무죄가 확정됐습니다.

“보상도 해줘라”

수사기관이 A 씨를 재판에 넘기는 사이 A 씨는 이에 맞서 국가를 상대로 민사 소송을 진행했습니다. 자신이 ‘불법체포’를 당한 만큼 손해배상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지난해 3월 민사재판 1심 법원도 형사재판과 마찬가지로 A 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경찰이 정당히지 않은 공무집행을 한 만큼 A 씨에게 700만 원을 배상해줘야 한다고 선고했습니다.

민사재판 1심 법원은 당시 A 씨를 비롯한 국민혁명당원들이 하려는 걷기 대회를 원천봉쇄하려는 시도부터 위법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집시법이나 감염병예방법은 이를 위반하는 행위를 ‘사후에’ 제지하도록 한 규정이지 ‘사전에’ 막을 수 있게 허용하는 규정이 아니라는 겁니다.

광화문 일대의 수많은 집회·시위로 인해 코로나19의 확산세가 오히려 더욱 증가할 위험성이 존재하였던 사실은 엄연히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대회참가자들이 대규모로 군집하거나 그것이 집회로까지 변질될 위험이 급박하게 초래되거나 현실화할 경우에는 사후에 경찰력이 적절히 대응·개입함으로써 집시법이 정한 해산절차에 돌입하는 것으로 충분할 뿐 1인 걷기대회나 원고(A 씨)의 참여 및 통행 자체를 사전에 원천적으로 제지하거나 봉쇄할 수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 지난해 3월 민사재판 1심 선고

법원은 형사재판 결과도 거론하며 “A 씨가 경찰관 목을 가격하고, 철제펜스를 들어 위협했다 하더라도 공무집행방해가 아닌 이상 현행범 체포는 명백히 위법하다”고 지적했습니다.

180도 뒤집힌 2심

여기까지만 보면 형사재판에서 무죄가 확정됐고 민사재판에서도 승소한 만큼 A 씨의 완승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민사재판 2심에서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사진=연합뉴스)
↑ 서울중앙지방법원 (사진=연합뉴스)

저희 취재진은 아직 알려지지 않은 A 씨의 민사재판 2심 결과를 최근 단독 취재했습니다. 지난달 18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7-2부(해덕진·김형작·김연화 부장판사)는 1심판결을 취소하고 A 씨의 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국가가 A 씨에게 배상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겁니다.

민사재판 2심 법원의 판단 근거도 기존 재판 결과와 180도 달랐습니다. 앞선 재판들은 모두 경찰이 집회를 막는다는 이유로 과도한 통행 제지를 하고 있었던 만큼 정당한 공무집행이 아니라고 봤습니다. 반면 민사재판 2심 법원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경찰이 통행을 막을 근거가 충분했다고 판단했습니다.

당시 이 사건 장소에는 대규모 인파의 군집이 예상되는 상황이었고, 코로나19의 확산세까지 고려하였을 때 경찰관들이 피해의 확대를 방지하기 위해 원고를 제지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할 여지가 충분히 있었다고 보이는 점을 종합해볼 때 경찰관들이 원고가 자신들의 공무수행을 방해한다고 인식하여 원고를 현행범으로 체포한 행위가 경험칙에 비추어 현저히 불합리한 것이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 지난달 18일 민사재판 2심 선고

정당한 공무집행이라는 전제가 성립된 만큼 이를 방해한 A 씨의 행위는 자연스럽게 ‘공무집행방해’가 성립한다는 게 이번 법원의 판단인 겁니다.

그런데 A 씨는 이미 형사재판에서 무죄가 확정됐습니다. 언뜻 보면 민사 2심 법원이 형사재판 결과까지 부정하는 걸로 보이기도 하죠. 이에 대해 민사 2심 법원은 이렇게 밝혔습니다.

비록 원고가 형사판결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원고가 경찰관을 폭행한 사실은 존재하였고, 경찰관 직무집행의 적법성 여부는 법원 판단이 이루어지기까지 이를 현장에서 즉시 판단하기 쉽지 않다. 수사기관은 혐의가 있으면 수사를 진행할 수 있는 것이므로, 그 후 형사재판 과정에서 무죄판결이 확정됐다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현행범체포가 위법하다고 할 수는 없다.

- 지난달 18일 민사재판 2심 선고

형사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건 이미 확정된 사실입니다. 이를 뒤집을 수는 없죠. 다만 재판 결과가 나오기 전 A 씨가 경찰을 폭행한 건 사실이므로 그 시점에서는 유죄 가능성이 있는 만큼 체포한 게 적법하다는 결론이 나온 겁니다.

코로나 집회 금지 논란 종지부 찍어야

코로나 시기 과도한 집회금지 논란과 공무집행방해 혐의 간 충돌은 A 씨 사례만 있는 게 아닙니다. 집회금지를 두고 수많은 법적 다툼이 있었고 결과도 그때그때 달랐습니다.

참고 : 코로나 시기 '과도한 집회 금지'…사법부의 역할은 어땠나 [법원 앞 카페]

A 씨 사례 역시 재판마다 다른 결론이 나온 만큼 결국 최종 결과는 대법원의 판단을 봐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앞서 형사재판에서는 검사 측이 상고하지 않아 2심에서 무죄로 결론 났지만, 민사재판의 경우에는 A 씨 측이 상고했습니다. 경찰의 제지가 적법한 공무집행이었는지 과도한 집회 금지였는지, A 씨가 경찰의 정당한 공무를 방해한 것인지 부당한 불법체포를 당한 것인지는 대법원에서 가려질 전망입니다.

나아가 대법원은 코로나 시기 정부의 ‘집합금지’ 처분 전반에 대한 적법 여부도 심리하고 있습니다. 이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맡고 있죠. 사실상 엔데믹을 맞이한 지금 코로나 시기의 논란에 사법부가 어떻게 종지부를 찍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우종환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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