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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방접종 맞고 숨진 영아…백신 때문이었다? [법원 앞 카페]

기사입력 2024-06-16 09:00

재판이 끝난 뒤 법원 앞 카페에 앉아 쓰는 법원 출입기자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때로는 소소하면서도 때로는 중요하지만 잊혀진 그런 법정 안팎이야기를 다뤄보려 합니다.

일러스트=챗GPT
↑ 일러스트=챗GPT

아이를 낳고 키우는 부모들은 대부분 ‘필수예방접종’에 대해 알고 있을 겁니다. 태어난 뒤부터 각종 면역 형성을 위해 의무적으로 접종해야 하는 것들이죠.

이 중 생후 2개월부터 두 달 간격으로 세 차례 맞는 영아 기초예방접종이 있습니다. 디프테리아와 파상풍, 백일해, 폴리오(소아마비), 헤모필루스 인플루엔자 비형균에 의한 침습성 감염증을 예방하는 ‘5종 혼합백신’입니다.

그런데 이 의무접종을 한 영아가 접종 뒤 이상증상을 보인 끝에 숨지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는 백신 때문에 사망했다고 주장했고, 예방접종 주체인 정부는 영아에게 선천적인 문제가 있었다고 반박했습니다.

결국 사건은 법정으로 가게 됐습니다. 수많은 의료계 전문가들이 참여한 재판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접종 4시간 만에 생긴 경련

지난 2017년 9월 25일 당시 생후 4개월이었던 A 양은 앞서 언급한 백신을 맞았습니다. A 양이 백신을 맞은 시각은 오전 11시였는데 접종 4시간 뒤인 오후 3시쯤부터 A 양은 팔다리에 힘을 주고 입술을 움찔거리며 눈을 깜박이고 안구가 왼쪽으로 돌아가는 식의 경련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날 병원에 입원한 A 양은 ‘영아연축’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영아연축은 생후 3~8개월 영아에게 발생하는 발작의 한 형태인데 영아에게 발병하는 뇌전증의 특수한 유형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A 양은 여러 차례 입원과 통원 치료를 반복했지만 상태는 더 안 좋아졌고 결국 약 9개월 뒤인 2018년 6월 숨졌습니다.

다음 해인 2019년 A 양 부모는 ‘백신 때문에 영아연축이 발병해 사망했다’며 질병관리본부(현 질병관리청)에 진료비와 간병비, 일시보상금, 장례비 보상을 신청했습니다. 하지만, 질본은 보상을 거부했습니다. 예방접종과 관련이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백신을 접종한 확실한 근거는 있으나 예방접종(9월 25일) 후 불과 4시간 이후에 증상이 나타난 점, 9월 29일 찍은 MRI 상에서 뇌백질의 부피가 감소된 양상을 보이는 등 예방접종으로 인한 것으로 보기에는 시간 간격이 너무 짧음. 뇌파검사상 고부정뇌파가 특징적으로 발생하고 있어 이런 뇌파가 발생하는 경련과 예방접종과의 연관성은 낮음

- 당시 질병관리본부 통보

엇갈린 전문가 의견

이에 A 양 부모는 2021년 질병관리청(2020년 질병관리본부에서 승격)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재판의 쟁점은 백신과 영아연축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 지였습니다.

재판에는 많은 의료계 전문가들의 의견이 제시됐습니다. 전문가들은 백신이 영아연축의 원인이었는지 아니었는지를 두고 의견이 갈렸습니다. 먼저 백신이 원인이라 보기 어렵다는 의견들은 이랬습니다.

자문의 B : 영아연축은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경우가 약 50% 정도 차지하며, 이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유전자가 원인이거나 검출되지 않는 유전적 원인일 거라 여겨진다. A 양이 맞은 예방접종이 영아연축의 원인이 아니다. 5종 혼합백신 예방접종이 뇌전증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A 양 영아 질병의 원인은 유전적인 원인일 가능성이 크다.

C 병원장 : 뇌 MRI 검사 판독 결과 A 양은 뇌백질의 부피가 감소했다는 소견이 있었고, 이는 출생 전후의 문제로 생겼을 걸로 판단되며, 손상 받은 시점으로부터 시간이 어느 정도 경과했을 가능성이 있다. 뇌 MRI 검사상 확인된 비정상적 뇌형태가 예방접종으로 인해 발생했다고 볼 가능성은 떨어진다. 백신이 영아연축을 발생시키는 기전은 규명돼 있지 않다. 백신 때문에 영아연축이 생겼을 걸로 판단하지 않는다.

D 병원장 (A 양 진료병원) : 발열 또는 컨디션 저하로 인한 발작 또는 경련이 발생할 수 있으나, 대부분 일시적이며 환아에게서 발병한 연축 경련이 예방접종과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된 바는 없다.


반면, 다소 중립에 가까우면서 백신이 원인일 가능성도 있다고 보는 의견을 보인 전문가들의 판단은 이랬습니다.

자문의 E : 영아연축의 원인은 뇌기형, 주산기 뇌손상, 유전자이상, 미상이다. 예방접종 직후에 경련을 시작해 일부 가능성이 있다고도 볼 수 있으나 타 문헌들을 보면 예방접종과 영아연축의 연관성이 높다고 보기는 어렵다. A 양 질병의 원인은 확인된 유전자를 제외한 원인 미상의 유전자 이상일 가능성이 높다.

F 신경과 전문의 : 백신 첨가물에 의한 면역반응으로 인한 증후군들에 의한 논문은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성이 드물다고 할 수 있지만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아직은 관련성에 대해서 근거가 필요한 시점이고, 지속적인 백신의 이상 반응에 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A 양은 유전자 검사에서 선천적인 기형은 발견되지 않았다. ‘백신의 첨가물로 인한 항원-항체 면역반응을 통해 뇌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여기에 적어도 미열을 동반한 경련이라는 이상 반응이 발생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모든 전문가의 공통적인 의견은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다’는 겁니다. 따라서 가능성의 영역에서 따져야 하는데 여기서 ‘확인되지 않은 선천적 유전자가 원인’이라는 의견과 ‘확인되지 않은 백신 부작용이 원인’이라는 의견으로 갈린 겁니다.

"백신 부작용 가능성" 손 든 법원

법원의 판단은 어땠을까요? 법원은 백신이 사망원인일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채택했습니다.

F 병원 신경과 전문의는 백신 첨가물로 인한 항원·항체 면역반응을 통해 뇌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고, 자문의 E도 예방접종 직후에 영아가 경련을 시작하였다는 점을 근거로 비록 연관성이 높지는 않지만 일부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

- 1심 법원

낮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으로 쉽사리 백신이 원인이라고 단정짓는 건 위험한 판단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법원은 감염병예방법과 질병관리청 홈페이지, 세계보건기구 자료 등을 잇따라 제시했습니다.

감염병예방법 11조와 시행규칙 7조 2항 및 별표 3은 백신 접종 후 7일 이내 ‘뇌증’이 발현하는 경우를 의사 등이 신고해야 하는 이상반응에 포함시키고 있고, 질병관리청 예방접종 도우미 웹사이트에서도 백신의 드문 이상반응으로 ‘경련’과 ‘뇌병증’을 언급하고 있다. 또 세계보건기구 자료에서도 백신의 중증 이상반응으로 ‘뇌병증’이 언급되고 있고 미국의 관련 자료에서도 백신접종 후 이상반응에 72시간 내 발생한 ‘뇌증’을 포함하고 있으며, 백신 제품설명서에는 시판 후 자발적 보고에 근거한 것이고 빈도도 ‘알 수 없음’이긴 하나 ‘발열을 동반하거나 동반하지 않는 경련’이 보고된 걸로 기술돼 있다.

위와 같이 법령과 질병청 웹사이트, 해외 자료 등에서 백신 이상반응으로 뇌증이나 관련 증상을 기술하고 있는 것은 국내외에서 백신을 투여한 후 뇌증이 발병했다는 내용의 보고나 신고가 다수 있었기 때문인 걸로 이해되고, 아직 인과관계 유무가 명확히 판정된 건 아니나 해외에서는 백신과 영아연축 내지 뇌전증 발병 간 인과관계에 관한 조사·연구결과도 어느 정도 축적되어 있는 걸로 보인다.

- 1심 법원

반면, 유전자가 원인일 가능성을 두고는 “유전자 이상 등이 원인이라는 의심이 들기는 하나 예방접종 이전에 여러 차례 시행한 유전자 검사에서 선천적인 기형은 발견되지 않았다, 현대의학으로 아직 밝혀낼 수 없는 원인 미상의 유전자 이상 가능성을 다른 다른 위험인자라고 평가하기는 곤란하다”며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법원은 백신 때문에 A 양에게 영아연축이 발병했고 사망에 이르게 된게 ‘명백히 증명됐다’고는 할 수 없지만 ‘불가능하다고 단정할 것은 아니다’라는 이유로 A 양 부모 손을 들어줬습니다. 법원은 질병청이 A 양 부모에게 예방접종피해보상을 해주라고 선고했습니다.

"A 양은 발달장애였다" 주장한 질병청

서울고등법원 (사진=연합뉴스)
↑ 서울고등법원 (사진=연합뉴스)

질병청은 항소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주장을 꺼내들었습니다. A 양에게 예방접종 전 발달장애에 해당하는 증상이 나타났다는 것이었습니다. 발달장애는 영아연축의 기준에 해당하기 때문에 영아연축이 생긴 건 백신이 아닌 A 양의 발달장애 증상 때문이라는 주장이었죠.

하지만 2심 법원은 이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지난 4월 25일 서울고법 행정7부(구회근 부장판사)는 질병청의 항소를 기각했습니다.

A 양과 같은 연령의 아기들의 발달속도는 개인 편차가 있는 바 단순히 A 양의 목가누기와 뒤집기와 같은 동작들이 또래 아기들의 평균 발달 시점보다 다소 늦다는 사정만으로 A 양이 발달지연 또는 정체였다고 보기 어렵다.

- 2심 법원

백신 부작용 가능성이 인정되는 기준


과거에도 A 양과 비슷한 사고가 있었습니다. 지난 1998년 A 양이 맞은 것과 유사한 디프테리아·백일해·파상풍 혼합백신을 맞은 영아는 사망하지는 않았지만 발작증세를 보였고 이후 성인이 될 때까지 증세가 호전되지 않으면서 결국 장애판정을 받기까지 이르렀습니다. 이 사건을 심리한 대법원은 '백신이 원인인지 명확하지 않은 증상'을 '백신 부작용으로 인정하는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예방접종과 질병 등 사이의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돼야 하는 것은 아니고, 간접적 사실관계 등 제반 사정을 고려할 때 인과관계가 있다고 추단되는 경우에는 증명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예방접종과 질병 사이 시간적 밀접성이 있고, 예방접종으로부터 발생했다고 추론하는 게 의학이론이나 경험칙상 불가능하지 않으며, 질병 등이 원인불명이거나 예방접종이 아닌 다른 원인에 의해 발생한 게 아니라는 정도의 증명이 있으면 족하다.

- 2014. 5. 16. 대법원

A 양의 경우에도 법원은 대법원이 제시한 이 기준에 부합한다고 봤습니다. 백신을 맞은 지 불과 4시간 만에 경련이 일어났고, 일부 의료 전문가의 의견과 감염병

예방법 조항, 질병관리청 안내, 백신 제조사 설명서 등을 종합하면 백신이 원인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 반면 유전자 이상 가능성의 근거는 거의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잇따른 1, 2심 패소에도 질병청은 상고했고 현재 대법원에서 사건을 심리하고 있습니다. A 양이 숨진 지는 어느새 6년이 됐습니다.

[우종환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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