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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중국] '조자룡의 고향·시진핑의 정치적 고향' 정딩현을 가다

기사입력 2023-12-30 09:00

시베리아 혹한이 몰아치며 베이징의 수은주가 영하 15도 아래로 곤두박질치던 지난 주말, 동이 채 트기도 전에 서부역(北京西站)에서 고속철도를 탔다. 1시간 남짓 가다 보면 스자좡시(石家莊市)에 도착한다. 예전엔 별로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는데, 근대 들어 석탄 산지로 도시가 급성장하며 허베이성(河北省)의 성도까지 올라섰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 여행의 목적지는 스자좡이 아니다. 역에 내려서 다시 택시를 타고 왔던 길을 30여 분 거꾸로 올라가면 나오는 곳, 바로 정딩현(正定縣)이다.

“나는 상산 조자룡이다!”…2천 년 전 그의 사자후가 들리는 듯하다

정딩현 하면 과거와 현재 두 사람의 이름이 떠오른다. 먼저 중국 고전 삼국지(三國志)를 읽어봤다면 “나는 상산(常山)에서 온 조자룡(趙子龍)이다”라는 말을 기억할 것이다. 정딩현의 옛 지명 중 하나가 바로 상산이고, 정딩현은 조자룡의 고향인 것이다.

아두를 품에 안고 늠름하게 서 있는 조자룡의 동상을 보고 이곳이 바로 조자룡의 묘임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 사진 = MBN 촬영<br />
↑ 아두를 품에 안고 늠름하게 서 있는 조자룡의 동상을 보고 이곳이 바로 조자룡의 묘임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 사진 = MBN 촬영


정딩현 최고 명소로 당연히 조자룡의 묘(趙雲墓)가 꼽힌다. 입구엔 조자룡 동상이 서 있는데, 품에 한 아기를 꼭 안고 있다. 그렇다. 삼국지 최고 명장면 중 하나인 장판파(長坂坡) 전투에서 유비(劉備)의 아들 유선(劉禪)을 구해 조조의 대군을 홀로 뚫고 나오는 그 모습이다.

시진핑 주석이 공직 생활을 시작한 곳, 정딩현

정딩현과 연관 있는 두 번째 사람은 중국 권력의 1인자 시진핑(習近平) 주석이다. 시 주석은 칭화대를 졸업하고 3년간의 군 복무를 마친 뒤 1982년 이곳 허베이성 정딩현이라는 시골 마을의 당 부서기를 맡으며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30년 후인 2012년 중국의 1인자 자리에 오르게 됐고, 올해 3연임에도 성공했다.

작은 시작 끝에 천하를 가져서일까. 시 주석은 자신의 첫 부임지인 정딩현에 대한 애착이 상당하다고 한다. 2008년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으로 권력 핵심부에 도달한 후 첫 지방 시찰에 나선 곳도 정딩현이었으며, 그 뒤로도 지금까지 매년 한 차례 이상은 공식, 비공식적으로 정딩현을 방문한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로 기자가 정딩현에서 방문했던 명소마다 시 주석이 현장을 찾았던 사진이 걸려 있는데, 19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그 시점도 다양했다.

시진핑 주석은 저장성 당 서기 시절이던 2005년에도 정딩현을 찾아왔다. / 사진 = MBN 촬영.<br />
↑ 시진핑 주석은 저장성 당 서기 시절이던 2005년에도 정딩현을 찾아왔다. / 사진 = MBN 촬영.


미‧중 정상회담 앞두고 중국이 공개한 사진…정딩현 시절의 청년 시진핑

지난달 중국에서는 1년여 만에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이 상당히 높았다. 실제로 관영매체들은 앞다퉈 회담의 분위기를 우호적으로 전달하고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시 주석의 옛날 사진이 공개됐다.

30대 초반의 청년 시진핑이 금문교 앞에서 찍은 사진이었는데, 정딩현에서 근무하던 시 주석이 미국의 선진 농업기술을 배우려 아이오와로 가는 길에 잠시 샌프란시스코에 들렀다가 찍은 사진이라고 한다.

금문교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시 주석의 청년 시절 모습. 이 당시 시 주석의 근무지가 바로 허베이성 정딩현이었다. / 사진 = X(옛 트위터)<br />
↑ 금문교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시 주석의 청년 시절 모습. 이 당시 시 주석의 근무지가 바로 허베이성 정딩현이었다. / 사진 = X(옛 트위터)


1980년대는 미‧중 두 나라가 수교를 맺은 직후 급속히 가까워지는 시기였는데, 이 당시의 시 주석의 모습을 공개함으로써 미국과의 관계를 다시금 원만하게 되돌리고 싶어 하는 바람을 나타낸 게 아닌가 싶다.

2024년의 미‧중 관계는?…호재보다 악재가 더 많다는 게 대체적 전망

그렇지만 현시점에서 내년도 미‧중 관계는 ‘맑음’이라고 전망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크게 3가지 변수가 있는데, 모두 갈등 완화보다는 갈등 고조 요인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먼저 다음 달 13일 치러질 대만 총통선거이다. 현재 친미‧독립 성향인 집권 여당 후보와 친중 세력인 제1야당 후보 간 박빙 양상이다.

2016년부터 이어진 차이잉원 총통 집권에 이어 이번에도 독립 성향의 집권 민주진보당 후보가 당선된다면 중국은 양안 관계의 긴장감을 더욱 높일 가능성이 크다. 그럴수록 대중국 첨단기술 통제의 핵심 국가인 대만의 안정을 원하는 미국과는 갈등이 커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친중 성향의 국민당으로 정권 교체가 이뤄진다면, 중국으로서는 반길만한 상황일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시각에서 보면 대만해협에 대한 통제권이 약해질 수 있어서 미‧중 관계가 순탄하길 기대하는 건 무리라는 시각이다. 결국 선거 결과가 어떻든 간에 미‧중 관계에는 좋은 영향보다는 나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중국 10대 사찰 중 한 곳으로 꼽히는 룽싱스(隆&#20852;寺). 1천500년 전에 지어졌는데 지금까지도 상당히 보존이 잘 돼 있다. / 사진 = MBN 촬영<br />
↑ 중국 10대 사찰 중 한 곳으로 꼽히는 룽싱스(隆兴寺). 1천500년 전에 지어졌는데 지금까지도 상당히 보존이 잘 돼 있다. / 사진 = MBN 촬영


다음으로 수년간 지속된 미국의 대중국 첨단기술 통제의 강도이다.

미국은 얼마 전 중국에 대해 첨단반도체뿐 아니라 범용 반도체까지 통제할 것이라고 천명한 바 있다. 첨단기술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차단하는 디리스킹(de-risking)을 통해 중국의 패권 도전을 막겠다는 건데, 중국의 마음은 더욱 다급해질 듯하다.

물론, 중국도 반격 중이다. 반도체의 핵심 원료인 갈륨과 게르마늄, 흑연 등 광물 자원의 수출 통제를 통해서 서방 국가들을 압박하고 있는데, 아직은 가시적인 변화를 끌어내지는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내년도 미‧중 관계에 있어서 결정적 사건은 11월 치러지는 미국 대선이다. 미국의 지도자가 누가 되느냐는 다른 모든 변수보다 가장 직접적이고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대중국 압박을 강화하고 인도‧태평양 전략을 강화해 온 조 바이든 대통령이 연임한다면, 미‧중 관계는 현재와 같이 긴장 속에 살얼음판을 이어갈 것이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복귀한다면 미‧중 관계의 앞날은 안갯속으로 빨려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그것은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의미가 아닌 순수하게 ‘예측 불가능한’ 앞날이라는 의미가 될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주창하는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의 핵심은 미국의 이익이다. 즉, 미국에 돈이 되지 않으면 동맹의 안위 따위는 별로 신경 안 쓴다는 것이고, 미국에 돈이 된다면 어제의 적과도 흔쾌히 손을 잡을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중국과의 관계가 전면전으로 치닫느냐, 아니면 해빙 모드로 가느냐 두 가지 시나리오가 모두 가능하다는 뜻이다.

정딩구청의 야경. 성벽 안은 옛 성터의 모습을 간직한 고적들로 즐비하다. / 사진 = MBN 촬영.<br />
↑ 정딩구청의 야경. 성벽 안은 옛 성터의 모습을 간직한 고적들로 즐비하다. / 사진 = MBN 촬영.


정딩현은 예로부터 수도의 남문 역할을 하며 베이징, 바오딩(保定)과 함께 북방삼웅진(北方三雄鎭)으로 불렸다

고 한다. 이런 까닭에 정딩구청(正定古城)은 성루나 성벽이 온전히 보존돼 그 웅장함이 시안성(西安城)이나 핑야오구청(平遙古城) 등과 함께 중국 대륙에서도 손꼽히는 옛 성터이다.

2023년이 저무는 시점에서 정딩현 성루에 올라 옛 성터를 보고 있자니 몇 시간 후면 찾아올 2024년의 세계는 어떤 모습일지 무척이나 궁금해진다.

윤석정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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